사회적 정의와 분배, 통합의 관점에서 '능력의 차이'는 중요한 이슈다. 누군가는 어떤 능력을 더 혹은 덜 갖고 태어난다. 우리는 종종 서로 다른 능력치 때문에 위계와 불평등이, 그리고 결국은 계급의 갈등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능력이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것은 하나의 순위 체계로 등급매겨질 수 있는 속성인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006년 작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능력'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쩌면 능력이라고 보기에 민망할 수도 있는 특정한 능력들을 보여준다. 한쪽으로만 아령 운동을 하는 바람에 오른쪽 팔만 비대해진 남자 레지, 신문의 낱말 퍼즐 풀기 고수 조이, 시끌벅적 주변을 산만하게 만드는 히피 무리,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 리즈, 어딜 가든 동물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자 벨 여사...
그런데 영화의 초점은 이들의 능력이 '다양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사회가 다원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양한 능력들은 요정 '스토리'를 구출한다는 하나의 목적 아래 통합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능력들은 위계지워지지도, 서로를 잠식하지도, 다른 능력에 대해 권력의 횡포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가령 레지는 자신의 팔 근육이 약하다고 투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조이만큼 낱말 퍼즐을 풀지 못한다고도, 벨 여사만큼 동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누구도 남의 능력을 시샘하거나 그 능력에 예속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생긴 대로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레이디 인 더 워터>는 그런 식으로 유아적이고도 동화적인,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갈망해왔던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만이 가진 울림의 원천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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