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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소통 가능성은 관계 가능성의 동의어가 아니다.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3. 28.

누군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2004년 작 <Lost in translation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번역이 됐었다)> 을 보고 말했다. 이 영화는 소통의 부재 속에서 오히려 소통이 피어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말이다. 얼핏 패러독스처럼 멋있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냥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일 뿐이다. 이런 문장이 남발되는 까닭은 사람들이 '소통'과 '관계'의 차이를 너무 쉽게 소거해버리기 때문이다. 소통은 언제나 표준적인 공통요소를 필요로 한다. 둘 사이의 언어가 동일하면 할수록 소통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 그러나 관계는 이와 정반대다. 나의 언어를 더 버리고 포기할수록 만남과 관계의 가능성은 증가한다. 소통이 불가능해질수록 관계성이 강화되는 신비함은 바로 거기에 기인한다. 영화 <Lost in translation>이 수많은 Translation들의 결여와, 그 과정에서의 손실들(Lost)을 경유하고서도 사랑이라는 관계성을 강렬히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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