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이 말을 하게 하는 법
정신치료자의 큰 목표 중 하나는 환자가 말하지 못하던 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것(es)'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뇌 안에 있을까? 그러나 치료실 안에서 일대일로 마주 앉아 '그것'에게 말을 걸고자 하는 치료자의 노력은 종종 실패하고 만다.
줄곧 말을 하지 않던 한 소녀가, 며칠 전 처음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입원실의 다른 또래들과의 만남에서 비로소 말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의 '그것'은 치료 공간이 아닌, 또래들과의 어울림이라는 맥락 안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와 그녀 사이에서 작동하지 않던 말하기의 기능이, 그녀와 또래 사이에서는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그것을 이용해 매우 용이한 방식으로 그녀와의 소통의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와 '거기'의 사이에, 나와 너의 사이에, 그녀와 동물, 그녀와 컴퓨터, 그녀와 스마트폰 사이에 있다. '그것'이 말을 하는 건 언제나 그런 '사이'의 맥락 안에서 뿐이다.
무의식을 겨냥한 모든 치료들이 '사이'들을 공략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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