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harted>라는 경험
이전에 스필버그 영화에서 나타나는 Awe(경이)라는 감정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 추억해보면 확실히 그의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그 특유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처음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쥬라기 공원>이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청난 '무엇'에 압도되어 극장을 나왔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경험했던 것들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존스 박사가 처음 알렉산드레타의 초승달 모양 협곡에 도착했을 때라든지, 성배가 위치한 페트라 신전에 도달할 때의 그 경이감 같은 것 말이다.
어린시절의 나는 그 감정을 반복하고 싶었다. 나와 친구는 동네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보물지도를 작성하고, 엑스표시를 한 뒤, 다음 번에는 여기를 탐방해보자고 기약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당시 놀이터 뒤쪽에는 올림픽대로가 놓여져 있었는데, 방음판이 높게 세워져 있었고 그 방음판과 놀이터 사이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플라타너스 잎들이 수북히 쌓인 그런 자투리 공간이 있었다. 그렇게 넓지는 않은 공간이었는데 항상 그늘이 져 있었고 뭔가 보이지 않는 듯한 비밀스러운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게임 <Uncharted 4>를 하면서 어릴적의 그 경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플레이하는 동안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거의 3일도 안 돼 클리어했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클리어 이후 다소간의 허무함을 느꼈고, 그 경험을 다시 되찾고 싶어 유사한 게임들을 다운로드 받았다. 그나마 <툼레이더>시리즈가 비슷한 것 같아 플레이해봤는데 실망만 얻었다. 가끔씩 비슷한 감정이 막 올라오락 말락 하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 짜릿한 어떤 느낌을 계속 끌고 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Uncharted>에서 그런 감정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나중에 이리 저리 생각해보니까, <Uncharted>같은 게임은 약빨(?)이 떨어질 때쯤 항상 '경치'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저런 모험을 즐기고 나서는 항상, 마치 휴식 시간이 제공되듯 주인공이 산 정상이나 동굴의 입구 같은 곳에 서서 앞의 배경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과거 <인디아나 존스> PC 게임들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나오곤 했던 것 같다. 존스 박사는 항상 어떤 '경치' 앞에 도달한 다음 한 손은 허리춤에, 다른 한 손은 모자 챙에 두고서는 모자를 고쳐쓰며 "휘유~ 멋진데?" 라는 식의 대사를 날린다.
"Why Jurassic Park Looks Better Than Its Sequels"라는 영상의 나레이터는 이런 짜릿함의 근원, 경이라는 감정의 근원이 스크린의 비율 안에 있다고 봤다. 2.35:1의 비율을 선호하는 최근의 영화들과 달리 쥬라기 공원은 1.85:1의 비율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 비율 안에서 작은 인간과 거대한 괴수 사이의 사이즈 차이는 더 두드러지고, 초라한 인간 군상의 앞에서 위용을 과시하는 자연물의 압도감이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는 것. 상당히 설득력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경이'라는 감정에서는 어떤 '거대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경이'는 '숭고'와 동일한 것일까. 칸트는 거대한 자연물 앞에서 우리가 압도되는 숭고의 경험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놀이터에서 느꼈던 감정은, 동일하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발견했을 때의 경이'이긴 하지만, 꼭 거대한 자연물을 동반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 장소는 그저 도로변 아래에 위치한 어두컴컴한 자투리 공간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다보니 사이즈만으로 그런 경이감이 전부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 <퍼시픽 림>이나 <고질라>같은 괴수 영화를 볼 때도 어떤 경이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건 Uncharted나 인디아나 존스에서 느껴지는 것과 조금 다른 색깔과 결을 가진다.
생각해보면 올림픽 대로 옆의 그 공간에는 무언지 모를 '깊이'가 있었던 것 같다. 어릴적 나는 거의 대부분 그 숲쪽에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쾌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 공간이 거대해서라기보다 차라리 작은데도 잘 보이지 않고 그늘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이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항상 그 장소를 멀리서 바라봐야만 했다. 가까이에서 그 장소를 바라보게 될 경우 점차 그늘진 장소들이 명확하게 시야에 들어오게 되면서, 경이감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파리 덩어리들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장소는 더 이상 비밀스럽지 않았고, 거기에는 가려진 영역이랄 게 없었다. 졉혀진 주름들의 깊이가 있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주름이 쫙 펼쳐져 나에게 드러나져 있었던 셈이다.
그 깊이는 가령 우리가 러브크래프트류의 공포물을 접할 때 느끼는 미스테리하고 불가해한 경험과도 닮은 부분이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미지의 영역들이 매크로한 스케일에서 마이크로한 스케일까지를 전부 담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령 <벽 속의 쥐>에서는 절대 '거대한 쥐'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디 작은 집쥐가 등장하는데, 이 쥐들의 행방이 미스테리한 상황에서 미지의 공간으로서의 '깊이'가 제시되고 (나중에 독자들은 이 쥐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소음을 일으키는 이유가 사실 집 아래에 위치한 거대한 지하동굴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경이와 공포를 선사한다.
내가 <Uncharted>를 플레이하며 느꼈던 감정 속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제 다운받아 플레이해본 <Uncharted : The lost legacy>의 한 장면을 올려본다. 주인공이 배경에 펼쳐진 광활한 유적지를 바라보는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압도될 만한 숭고를 느낌과 동시에, 그 거대한 건축물들 사이사이에 있는 주름진 영역들을 바라보는 와중에 그 너머에 놓여있을 무엇을 상상하며 쾌감을 얻는다.
'[Verleugnung]의 글 > 철학적 단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아함과 원함 (0) | 2020.12.20 |
---|---|
호르몬의 노예 (0) | 2020.12.17 |
나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만났는가 (0) | 2020.11.11 |
세계는 하나의 번역이다 (0) | 2020.11.10 |
습관과 관습 (0) | 2020.1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