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시골에서 공중보건의 근무를 마치고 떠나던 날, 지독히도 큰 슬픔을 느꼈다. 나는 내가 다니던 길목과, 내가 살던 관사, 병원 로비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람들은 그 장소에 사람들과의 추억이 묻어 있어 그런 거라고 말했다.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내가 그 장소와의 이별에서 느꼈던 애도의 감정은 분명 공간적이고 지형학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그 애도 속에 인간의 자리는 없었다.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는 그런 감정을 참 잘 담지 않았나 싶다. 뒤져보니 이 영화가 벌써 20년이나 됐단다. 내 친구들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윌슨 미안해~!"를 소리치며 낄낄거리곤 했다. 물론 나도 친구들을 따라 배구공을 향한 절절한 감정을 패러디하곤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사실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몇 번 씩이나 질질 짰다는 것을.
정신분석학의 개념 중에 '대상(object)'라는 게 있다. 이게 말만 들어보면 마치 사물을 지칭하는 것만 같아서, 학생 강의를 나가는 교수님들은 항상 단골 주제로 이 개념을 약술하곤 한다. 사실 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아이에게 엄마는 첫 대상이다. 그런 대상들이 모여서 사람의 내적 세계를 구성한다. 그 안에는 다양한 타자들의 얼굴이 있고, 그러한 타자들과 한 세계를 공유하는 자기의 얼굴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 분석학자들은 이런 것이 인간의 내적 대상관계를 형성한다고 본다. 내적 대상관계는 결국 그 사람이 실제 현실에서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이 '대상'이라는 말이 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면이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른 용어로 지정되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들 말한다. 동의하는 면도 있다. 용어가 직관적이면 아무래도 개념을 정립하는데 훨씬 시간이 빨리 걸릴 것이고, 그만큼 일반인들이 오독하게 되는 일도 줄어들테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 '대상'이라는 말이 참 그럴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진료를 보다보면 애완동물과의 애도 과정을 잘 못 견디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부모의 죽음보다 자신의 애완견이나 애완묘들의 죽음에 더 큰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알코올이나 술병이 갖는 존재론적인 지위는 인간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인형과 액션 피규어를 갖고 놀며 자신의 머릿속에 환상 속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아이의 세계 속에서 이 장난감들의 존재는 같은 유치원 친구의 그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Winnicott은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는 과정 중에 흔히 담요 같은 물체와 애착을 형성하게 되면서 (요즘은 이런 사물을 '애착인형'이라고들 부른다고도 들었다) 상실을 보상한다고 말하면서, 이를 이행기적 '대상'이라고 불렀는데, 퍽이나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흔히 이것이 '이행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엄마로부터 내적인 엄마의 상으로, 혹은 엄마가 아닌 타인들의 상으로 이행되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이행기적인 진짜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차원의 대상 개념으로 '이행'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거기에서 아기는 단순히 인간과의 관계를 너머 일반 사물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계로 이행되어간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물이나 동물들과 은연중에 이런 관계들을 맺고 살아간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이미 해오고 있다. 사람들이 <토이스토리 3> 속 '우디'와 '앤디'의 이별을 보며 오열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거나, 혹은 그것이 인간과의 이별을 장난감이라는 상징을 통해 유비적으로 보여주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분명 그 지점에서 과거 우리가 사물과 맺었던 어떤 독특한 애착과 상실의 경험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우리가 인간들과 관계맺으며 갖게 되는 그런 경험과는 질적으로 아주 다른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윌슨과의 이별 외에 나를 또 울게 했던 장면이 있어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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